걷는교회?

2009/12/26 02:38 from ▶교회 안내
  

 <걷는교회>에 대해 여러분들이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에서부터 예배는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 비가 억수같이 오거나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날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이 모든 것이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 말고는, 몇 가지 원론적인 생각 말고는 보다 구체적인 안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목 길목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협업', 각자의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그 과정 자체가 우리 <걷는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도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궁구하고 있습니다.
 최 재범님이 출범에 즈음한 발문을 빨리 쓰라하시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첫 준비 산행이니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천천히 쓰기로 하고(양해해주십시오!!) 우선 몇 가지 생각만 간략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걷는교회>는 특정 현상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 아닙니다. 만연되어 있는 성장과 물신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만 인식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리쳐야 할 대상을 인위적으로 상정하거나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 또 다른 목표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패러다임 안에서 형태만 다른 모습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고와 인식, 형식과 실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사회적, 종교적 현상 안에서 성찰된 것이기는 하지만 신앙 활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예수님의 삶에서, 그를 본받아 끊임없이 걸었던 신앙의 스승들의 삶에서 본받자는 것입니다. 앞으로만 달려가라 하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거꾸로, 그러나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화해와 평화, 구원의 안식, 연대와 일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와 공경, 그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삶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마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끊임없이 걸으셨던 예수님을 닮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있었음에도 관계와 습관, 두려움, 낮 설음 때문에 불편함을 안은 체 주저하며 앉아 있던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자연, 사람, 하느님의 품으로 함께 걸으며 그런 마음을, 그런 삶을 실현해보자는 것입니다. 자유를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걸음이, <걷는교회>가 하나의 대안으로, 닮고 싶은 아름다운 삶으로, 공동체로 여겨진다면 영광이고 기쁨이 되겠지요. <걷는교회>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의 가르침대로 노력하기 위해 모입니다. 독립적이며 독자적이고 스스로 그러한(自然) 교회입니다.


 <걷는교회>는 울도 담도 지붕도 없을 것입니다. 길을 찾아 길을 걷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나는 바로 성전입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의 마을이, 숲길이, 강둑이, 들판이, 그 길에서 만나는 새와 바람과 물과 흙과 하늘이 우리들의 교회당, 예배당이 될 것입니다.


<걷는교회>는 위계적인 계급(Hierarchy)도, 경영(Management)을 위한 구조도 없습니다. 모두가 길잡이이고 길동무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그리고 세월을 겪으며 쌓여진 독특한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에 좀 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Pay Attention) 공경(Reverence)하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관계로 다가올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갈 것입니다. 아주 작은 소리로도 서로의 존재를, 그 존재의 의미와 갈망을 알아듣는 ‘지음지기(知音知己)’,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길벗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영성이고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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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소 | 수정/삭제 | 댓글 송경용 2009/12/27 20:05

    눈이 많이 내립니다. 골목마다 엉금엉금입니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실 분들 정말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라매 공원이 아주 운치가 있네요. 날리며 내리는 눈과 나무가지에 걸려있는 눈이 가로등 빛에 비추이니 참 아름답습니다.
    집 앞 오가는 길목과 주차장 앞을 쓸었습니다. 오랜만에 해 본 제설작업입니다. 가볍기만 한 눈도 쌓이고 덮히니 제법 무겁습니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정겨운 집들의 지붕위에도 부서진 집 터와 널려진 가재도구 더미 위에도, 걸어가는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에도, 미끄럼을 즐기는 아이들 위에도 쌓이고 있습니다. 손이 시렵고 얼굴도 차가운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몽롱한 듯 희뿌연한 세상입니다. 곧 좋아지겠지요. 곧 다 녹아 내릴 것입니다. 나무에 싹이 돋을 것이고 싱싱한 나물이 밥상에 오를 것입니다. 힘찬 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처럼 맞 아본 눈 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새 해 복 많이 지으시고 받으시고 나누시기를 빕니다.

  2. 주소 | 수정/삭제 | 댓글 김준엽 2009/12/27 20:50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의 4년 가까이를 교회라는 공간과 생이별하고 지내는 동안 친구들과 가족들의 수많은 유혹과
    전도의 손길을 뒤로 하고 그냥 기독교 낭인으로 지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의 새도, 들판의 들풀도 거두시는 하느님이 미천한 저에게 예수교회의 일원으로 설 자리를 주셨습니다.
    낭인생활을 오래 하다가 다시금 교회의 세포가 된 오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잘나가는 온누리교회, 사랑의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아닌 걷는 교회. 세속의 시야로 보면 돋보기를 껴도 보일 둣 말듯 미거한 교회, 작은 교회이지만 그곳에
    채워질 엄청난 하느님의 계획과 운명적 부르심에 열렬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는 관용과 타협, 망설임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사랑은 관용도 타협도 망설임도 아닙니다. 정말해야 할 것, 진정해야할 일, 정의로운 것, 평화로운 일을 위해 그저 죽는 것. 그것이 예수가 보여준 사랑이라 믿습니다. 한치의 망설임과 물러섬없이 죽음에 이르는 것 그것이 예수의 길이고, 그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길 교회의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과감하고, 기탄없이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의 그 길 고난의 길. 오직 그 길에 희망이 변혁이 진보가 사랑이 있음을 가슴 속 깊이 되새겨 봅니다.
    송경용신부님을 통해 인도하신 하느님의 은혜에 열렬한 찬양을 드립니다. 기다리기를 참 잘했다.

  3. 주소 | 수정/삭제 | 댓글 향기원 2009/12/28 17:53

    몇가지 간략한 생각이라 하신 <걷는교회>에 대한 단상이 참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걷는교회>를 통해서 새로이 만나고 함께할, 길과 바람과 길동무들로 인하여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입니다.